우리는 앞으로 '제품'을 만들어 쓰게 될까?
부엌이 생겼다고 해서, 음식점이 사라진 적이 있었나?
엉뚱한 질문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집에서 충분히 음식을 해먹을 수 있고, 요리 재료도 손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해서 배달을 시켜먹고, 외식을 하는걸까?
단순히 외식이 주는 '기분' 때문이라고 한줄로 일축할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배달을 시키면 원자재 가격보다 더 비싸게 음식을 시켜야 하고, 조리되는 동안 기다려야 하며, 배달통에 들어가 우리 집 앞으로 오는동안 완전히 식어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수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배달을 시키고, 밖에 나가서 음식을 먹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내가 직접 만든 것 이상의 맛을 '간편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핵심 요소는 '간편하게'이다. 머리아프게 원자재 가격을 계산해가면서 장을 봐야 할 필요가 없고, 조리도구를 직접 꺼내서 재료를 손질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요리에 필요한 모든 향신료를 구비해두지 않아도 되고, 식사를 하고 나서 잔뜩 생겨버린 설거지를 직접 처리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이 모든 과정들을 직접 한다면 집에서도 똑같은 음식을 (퀄리티에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해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엌이 있음에도 음식점과 가게는 단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자영업장의 전문성이 주는 퀄리티적인 만족과 간편함이 직접 요리를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간편함'에 돈을 지불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OTT 서비스, 각종 SaaS 서비스, 구독제 어플리케이션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앱들, 이메일 앱, 개발 편의성 앱, 컨텐츠 생성 앱들을 개인이나 작은 조직이 내재화시켜 인하우스로 개발하는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개의 플랫폼을 만드는것도 사운을 걸어야 할 정도로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모되었기 때문) 여러 SaaS 서비스를 내재화시켜서 활용하는 곳은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거의 유일할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개발 효율성이 말 그대로 100x, 기존에 비해 100배 더 싸고 100배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시대가 AI로 인해 열리고 있다.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모든 가정의 집에 비용과 설계 문제로 인해 부엌을 놓을 수 없어서 모든 음식을 배달시켜야 했던 시대에서, 각 가구당 1 부엌이 놓이게 된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인류 역사상 부엌이 존재하지 않던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은,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음식을 집에서 해먹느냐? 이다.
아니다. 우리는 부엌에서 모든 요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다.
그리고 이 개념은 웹 서비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다나와 닷컴은 모든 인터넷에 있는 제품 정보를 검색하고 분석해서 가장 싼 제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이다. 이런 서비스를 만약 개인 혹은 소규모 조직에서 단순히 '검색' 용도로만 사용하기 위해서 개발한다면 어느정도 공수가 들게 될까?
물론 개발 자체는 AI의 도움을 받아서 매우 쉬울 것이다. 가격 비교 서비스등을 에이전트 주도 개발로 구축하는것은 말 그대로 '껌 씹는 난이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다음은? 데이터 수집은? 운영은? 서버 구축은? 내/외부 배포 후 운영 안정화는? 서버 확장에 따른 인스턴스 추가 및 무중단 배포 시스템 구축은? 실시간 데이터 수집을 위한 각 쇼핑몰별 정책 위반여부 확인 및 API 연동 협상은? 인증 서버로 사용하던 인스턴스의 IP가 쇼핑몰 측에서 밴을 당했을때의 대응 정책은?
이처럼 수도없이 많은 물음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서비스 개발이고, 플랫폼 구축이다. 그래서 이러한 SaaS를 인스턴트로 개발하는 행위를 요리에 비교한 것이다.
누구나 레시피가 있다면 낙곱새 정도는 만들 수 있다. 그냥 쿠팡에서 낙곱새 밀키트를 주문해도 되고, 그것보다 더 높은 퀄리티로 해먹고 싶다면 재료를 각자 따로 주문하고 소스는 직접 만드는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해봣자 한명 먹을 음식인데, 조금 복잡하면 어떤가? 나 혼자 먹을 음식 정도는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한번에 1인분이 아니라, 5인분을 해야 한다면? 가족 단위를 넘어서 지자체에 있는 모든 직원들의 낙곱새를 해줘야 한다면? 50인분, 500인분을 만들어야 한다면 어떨까?
이렇게 규모를 늘리는 것 만으로 생각할 거리는 무한히 늘어날 수 있다.
▶ 매일 아침마다 재료가 정시에 도착해야 하는데 쿠팡으로는 한계가 있다. 재료별로 도매업체에서 직송계약을 맺는것이 더 경제적인 방안이 아닌가?
▶ 요리하고 나서 남은 재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통기한이 정해져있는데 다시 얼려버리면 맛의 품질이 크게 떨어진다.
▶ 100인 이상의 요리를 할 수 있는 조리 도구와 조리 시설, 정해진 시간 내에 음식을 만들고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조리 인원과 장소는 일시적으로 고용 및 대여를 할 것인가? 매번 시설을 처음부터 세팅해야 하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나?
▶ 해당 요리는 정확히 어느 시기에 수요가 발생하는가? 1년에 두 세번 100인분 이상을 조리해야 한다면 자체 조리 시설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이 아닌가? 차라리 전문 업체에 대규모 주문을 하는게 낫지 않나?
라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결국 자주 해먹지 않을 음식을 수백인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 가정 자체가 엄청난 비효율성을 불러오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외주라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이 논리는 SaaS 서비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개인이 Canva를 만들 수는 있다. 번개장터를 만들수도 있고, 에어비앤비를 만들수도 있다. 심지어는 넷플릭스를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서비스를 운영하고, 성장시키고,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데에는 엄청난 양의 노력과 시간과 자본이 들어가게 된다. 쓸만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물론 앞으로 AI의 발전과 LLM의 범용적 기능 확대에 따라 사라지게 될 서비스는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일단 유튜브 요약 서비스부터 시작해서, PPT 자동 생성기능까지 지원하는 서비스 (스타트업)들은 굉장히 많은데 그런 모든 부분들을 초대기업 테크 회사에서 제공하는 AI가 모두 다 처리할 수 있게 되면 더이상 이런 기업들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AI의 발전에 대체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이미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고 경쟁력이 뒤떨어지기 때문에 자연도태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글, OpenAI, 엔트로픽에 대체되지 않는 서비스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당장 AGI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사람들은 신작 영화를 넷플릭스에서 볼 것이며,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쿠팡에서 주문할 것이고, 최저가 가격 비교를 할때는 다나와를 사용할것이며, 신박한 제품을 구매하고 싶을때는 와디즈를 찾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별화' 이다. 그리고 이런 차별화를 이루지 못한 기업들의 제품들은 이미 망해서 사라져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바이브코딩이라는 것은, 지금까지는 특수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만 '요리'를 할 수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요리의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모두 간략화시켜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엌을 쓸 수 있게 된것과 동일하다. 물론 이것만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되긴 하겠지만, 결국 개인이든 조직이든 그들이 만든 제품과 소프트웨어, 플랫폼은 운영과 자본, 그리고 마케팅을 통해서만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궤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각잡고 요리를 한다면 이태리 마르게티따 피자 정도는 만들수는 있겠지만, 그걸 매일 100인분씩 만들고 손님들에게 서비스와 함께 대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숙련된 인원은 물론이고 시설, 자본, 시간, 실력, 광고, 장소, 시기. 이 모든것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규모'의 비즈니스이다.
아마도 대체되는 것은 과자, 라면, 음료수와 같은 '편의점 레벨' 음식, 즉 인스턴트 서비스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아무리 쿠팡이 맘에 안든다고 해도 개인이 바이브코딩으로 쿠팡을 대체할 플랫폼을 만들어낼수는 없는 법 아닌가. 만약 쿠팡의 모든 아키텍처 스케일을 커버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낼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서비스를 운영할 자본과 인원을 모으는 것, 자영업 및 유통업자들을 자신의 플랫폼에 입점시키는 것, CJ/신세계/G마켓과 같은 굴지의 대기업들을 상대로 모든면에서 경쟁해 살아남는것, 한달에 수억짜리 광고를 태워버리는 경쟁 업체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절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 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안된다는 것이다 (무지성으로 걍 안된다는게 아님)
앞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대중화 됨에 따라서, 기술 권력이 무너짐에 따라서 수많은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제품들이 시중에 흥행할 것이다. 이걸 비교하자면 기존에는 엔터테인먼트 컨텐츠를 방송국에서 독점하고 있었지만, 유튜브의 등장 이후로 개인 크리에이터들이 생겨나면서 기존의 지위를 잃게 된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모 채널의 PD는 "전국민이 계급장 떼고 붙게 되버린거다" 라고 표현한 바가 있다.
유튜브라는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생겼지만, 어쨌든 수요 자체는 어마어마하게 변하진 않았다. 그 양상이 복잡해진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타면서 지루함을 달랠 요깃거리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게 30년 전에는 해봤자 몇종류 되지도 않는 신문이였다면, 이제는 그게 전세계에있는 모든 즐길거리, 엔터테인먼트 거리를 손 안에서 제공해주는 '휴대폰'으로 바뀐 것이다. 결국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는 본질적 수요 자체는 단 한번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과연 얼마나 바뀌게 될까. 일하지 않게 되고, 기본 소득 만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10배 더 많이 엔터테인먼트를, 서비스를, 소프트웨어를 소비하게 될까? 소비시장의 급격한 비대화가 발생하게 될까? 이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 미래의 청사진은 있긴 하다. 그건 바로 NUHI (Neo-Universial Hight Income)이다. 이에 대해 기술하려면 사회와 정치, 정책, 그리고 국가의 개념적 변화까지 다뤄야 하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다뤄봐야 할 것 같다.
결국 살아남는것은 쭉정이가 아닌 알맹이라는 것이다. 개발 기술의 민주화는 역으로, 다시는 범접하지 못할 정도의 기업간의 벽을 세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역으로 말이다.